신은 완전하신 분이시며, 인간은 불완전한 이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신은 이기고 다스리고 통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반면, 인간은 세상임금인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은 이러한 능력으로 모든 것에 자쾌하며 어떤 문제도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이성을 가진 인간은 높은 난관에 부딪쳐 실패와 좌절의 악순환을 거듭합니다. 그 입술에서는 원망 불평의 소리가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왜 불완전한 이성으로 추락하게 되었으며, 실패와 좌절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일까요? 왜? 사업문제, 자식문제, 부부문제, 건강문제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원래 신의 형상으로 지음 바 되어 완전한 삶을 살아가던 인간이 욕망이라는 덫에 결려 그 본연의 모습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절대자의 품 안에서 존재의 설계도 대로 살아가야 했건만, 내 뜻대로의 충동을 절제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 이후로 모든 존재가 욕망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욱더 깊은 수렁 속으로 끝없는 고통의 질주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악순환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진리 앞에 겸손히 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손길을 따라 살아온 절벽에 서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 고집 내 주장을 내세워 이곳까지 오게 된 나의 잘못을 뉘우쳐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참회라고도 하고, 회개라고도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외 없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시로 반성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십 년을 살아온 내 존재 자체를 돌아보고 뉘우친다는 것은 하늘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눈앞의 길도 제대로 보지 못해 실수를 연발하던 존재가 어떻게 수십 년의 세월을 통찰할 수 있을까요? 거대한 빛의 도움 없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이야말로 지상 최고의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후로는 내 뜻대로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시는 지난날 벗삼았던 어둠과 친해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용히 살고 싶어도 세상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가는 곳마다 걸림돌이 난무합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갈등은 과거의 습성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화를 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은 꿀떡 같지만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거듭 태어난 존재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특급처방이 제공됩니다. 거부할 수 없는 환경속으로 투입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나의 자아를 깡그리 제거할 거대 존재와의 만남을 추진합니다. 나를 내려 놓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버립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는 환경과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들이 나를 나 되게 하는 신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래야 지금까지 짊어지고 살아온 거짓된 나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모든 선지자들의 삶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고통의 길이였습니다. 마치 감옥의 삶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모세, 야곱, 요셉, 사도바울 등, 그리고 불교 큰 스님들의 삶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많습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행위입니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이런 고통의 값어치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절대 평안이요, 기쁨이요, 자유가 뭔지 알고 살아갑니다. 더 나아가 모든 인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신의 능력이 내 안에 자생하게 됨이 놀랍기만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큰 고통은 내 의지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부인함으로 신과의 관계 회복을 통하여 내 본연의 마음을 찾는다면 우리에게 펼쳐지는 것은 다스리고 통치하고 충만한 삶의 현장이 됩니다. 인간의 가치가 축소되고 있는 가슴 아픈 현실 속에서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회복해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신에게는 영광이요, 인간에게는 최대축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