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희로애락의 연속입니다. 기뻐하다 늙어하며 사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모든 인생들 앞에 펼쳐지는 삶의 패턴입니다. 부처는 고집멸도라는 사성제를 주장하며 인간이 겪어야 하는 삶의 패러다임을 정립했습니다. 인간의 삶에 고통은 지극히 당연한 관계임을 명시합니다. 실제로 인간의 삶의 중심에는 고통이라는 강력한 매개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이 전하는 메시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중요하고 강력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요소만 말하자면, 고통만이 인간의 전인격을 상승시켜 가는 위대한 도구입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자들에게 고통은 무한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저 힘든 순간을 벗어나기 위한 존재에게는 무거운 짐에 불과합니다.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고통의 의미는 위대한 가치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는 자체가 고통과 동행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삶에 결코 배제될 수 없는 것은 모든 인간이 걸치고 있는 고통의 옷입니다. 이 모습은 아직도 어둠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아직도 진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내 뜻대로의 길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결과물이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벗 삼아 가는 길의 마지막은 아픔의 종착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혹스러운 고통도 존재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긍정의 의식을 첨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반기는 다양한 선물이 있습니다. 모두가 나에게 필요한 요소들을 선호합니다. 본능으로 살아가는 자는 그저 육신의 만족을 채우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주의 주인공임을 알고 살아가는 존재들은 내 존재의 본래면목을 찾는 것을 기대합니다.
자신이 밝은 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착각 속에 젖어 사는 인생들에게는 고통은 그저 어둠을 밝히는 하찮은 불빛에 불과합니다. 그렇지만 썩어질 곳으로 인도하는 자아의 성을 파괴하고자 하는 영적존재들에게 고통은 강력한 생명의 빛이 됩니다.\
인생은 존재의 크기로 결정됩니다. 평안이 아니라 편안을 기대하며 사는 존재들은 자신의 수준만큼 살게 됩니다. 그러나 털이 다 깎인 양들처럼 궁극의 순수한 모습을 회복하려는 존재는 하늘을 품고 영원한 생수를 세상에 흘려보내기 위해 자아의 무능함을 인정합니다. 소인배와 대인배의 차이가 이런 것입니다.
나의 거짓된 자아의 옷을 벗겨내어 진리의 존재로 만들어가는 도구가 바로 고통이라는 완벽한 선물입니다. 알고보면 이것은 모든 존재에게 예외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나를 진정한 나로 만들어가는 사랑의 손길임을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어떠한 고통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외면해야 하는 불청객이 결코 아닙니다.
나를 찬란한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고통의 용광로가 진정 사랑의 터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