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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우는 것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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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7. 12.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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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를 벗어나면 교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식이 귀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출산문제가 모든 나라의 문제로 대두되지만, 특히 대한민국은 심각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사랑해서 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의견을 내비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한다 해도 자녀에 대한 개념도 부족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인생, 자식이라는 올가미에 걸려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것은 원천적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잘못된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남녀가 있다는 것은 결혼이라는 새로운 울타리를 통하여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성숙된 존재로의 길을 가야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했으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탄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기주의가 낳은 병폐인 나만의 유익을 위한 삶은 모든 존재가 가야 하는 순리의 길을 외면하게 합니다. 이런 삶 속에서 맺게 되는 열매는 겸손의 반대편에 서 있는 교만입니다. 존재의 성장이 아니라 미성숙이라는 멈춤의 단계에 머물게 됩니다. 

 

손에 쥐고 있다가 없으면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혼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이혼을 경험해 보기 전과 후에 어린 자녀를 생각하는 깊이가 확연이 달랐습니다. 하늘이 내려 준 축복의 선물인 자녀와 함께 하던 즐거운 시간과 헤어져 만나지 못하는 고통의 시간이 주는 의미는 경험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녀를 통해 전달되는 의미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먼저 기도를 할 때의 마음이 달랐습니다. 아픔을 겪기 전에는 무작정 머리를 조아리며, 내 새끼 잘 되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저 좋은 아이, 좋은 만남을 통해 순탄한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는 마음을 담아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혼의 아픔을 겪으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과의 재회를 앞두고 '네 자녀를 위해 울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딸아이 앞에 서야 할까?'

나를 존중하는 것이 사랑의 순서입니다. 

그리운 마음과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딸아이를 위한 기도를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지극히 당연한 처사입니다. 그러나 정작 부모 자신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삶이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눈물로 기도를 하고, 입술로 고백한 그 마음 그대로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만나게 되는 딸아이는 나의 눈을 보고, 나의 말을 듣고, 나의 의식상태로 오랜만에 만나는 아빠를 판단하게 됩니다. 딸아이 앞에 서게 되는 나의 진심만이 올바른 관계를 이끌어 가게 됩니다. 고로 나의 모순됨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제는 누구를 위해 울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내리사랑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가치 정도만큼 자녀의 가치로 흡수됩니다. '자녀를 위해 울라'라는 말의 의미가'나 자신을 위해 울라'라는 종착지에 도착되었습니다.

어릴 적 소원은 나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으로 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나로 인해 시작된 모든 삶은 내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확증됩니다. 그 시작은 먼저 내 자신을 위해 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자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빛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성숙의 옷을 걸치게 됩니다. 

존재의 푯대 되시는 예수가 그랬습니다. 존재회복의 표본을 보인 부처가 그랬습니다. 홀로 자신의 임무를 완성하고자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혈투를 벌이시고 홀로 생명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눈물의 씨앗을 통해 우리는 진리의 길을 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자녀의 빛이 되기 위해 나를 위해 먼저 울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운 딸아이를 통해 전해진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하늘에서 내려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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