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도매체를 도배하는 최고의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입니다. 대기업에 다녀야 관심을 받고, 돈이 많아야 살고, 집이 있어야 어깨가 펴지고, 부동산이 있어야 동창회모임에 참여합니다. 모든 방송매체에서도 집값 오르고 땅값 오르고 어느 연예인 누가 산 건물이 몇 십억의 시세차익을 만들었다가 최고의 핫이슈로 떠오르는 세상입니다. 모든 관심을 경제력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만큼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드뭅니다. 왜냐하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며, 자기를 포장하기에 이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온 나라가 경제독립, 경제부강이라는 타이틀 아래 무역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나라, 돈이 되는 일거리는 생사를 불사하고 뛰어듭니다. 마치 먹잇감을 찾은 하이에나들이 모여드는 것과 같은 현상입니다. 열정, 열심 너무나 아름다운 단어들입니다.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로 대두됩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경제를 쫓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돈의 노예가 된 결과, 존재의 본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만물의 영장인 존재들이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불과한 돈보다 못한 존재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더 커져 버렸습니다. 존재의 몰락은 물론이고, 세상의 몰락이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성령의 열매 9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성, 충성, 온유, 절제" 이것을 묵상하면서 나름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사랑이 왜 처음에 등장하지? 그리고 절제가 왜 마지막에 등장할까?" 사랑은 존재의 최고 가치입니다. 그러나 사랑도 절제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에 순응하지 않는 부모들이 낳은 자녀들의 방종을 보면 쉽게 공감하리라 여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존재보다 하찮은 돈에 대한 절제를 단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후유증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라는 존재에 관심을 주지 않으면 나는 몰락하게 됩니다. 몰락은 나 보다 소중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빼앗길 때입니다. 내 마음의 성이 짐승들에게 빼앗기면 내 마음은 황무지가 되고 맙니다. 부부관계를 보세요. 조강지처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그런데 불어오는 바람과 같이 스쳐 지나가는 여인에게 더 마음을 주게 된다면 결국, 가정 파탄이라는 몰락의 결과물을 가져옵니다.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소중한 나 자신을 너무 홀대히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곧 우주입니다.
모든 공동체의 성장과 무너짐은 지도자의 영향력에 비례합니다. 여기서 규모의 크고 작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삶의 향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존재들의 삶의 향기가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수준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대변해 줍니다.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존재의 수준이 세상의 수준입니다. 그리고 존재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며, 문화의 수준입니다. 우리가 우주의 주인이기에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본분을 지니고 있는지 분명히 각인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