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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마음을 둔다는 의미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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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11. 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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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지극히 강조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반대로 교만이 얼마나 위험한 요소를 담고 있는지 강조된다. 교만은 자기 위주의 삶을 사는 존재들과 함께한다. 바로 지금 이 시대가 최고의 절정에 다다라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 자만심, 거만함이라는 단어들이다. 
 
불교에서는 하심이라는 단어로 낮은 마음의 온전함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낮은 마음, 즉 겸손이라는 단어로 말씀을 나열한다. 왜 그럴까? 높은 마음에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 바로 불안감이기 때문이다. 언제 무너질지, 언제 꺾일지, 언제 다칠지,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것이 높은 마음이다. 그리고 존재의 격이 신의 격과 너무 먼 괴리감을 부채질하는 것이 높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높은 마음 즉, 교만이라는 것은 타락한 존재들에게서 표현되는 가장 강력한 장난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정 낮은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품고 있을까?
 
우리는 교양의 차원에서 겸손이라는 의미는 자기를 낮추는 자체가 남을 존중하는 표현으로 대신한다. 그러나 영적 차원에서의 겸손은 조금 다르다. 영적 차원에서 낮은 마음이란 결국, 신의 성품을 닮은 존재들을 일컫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낮은 마음이란,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의 마음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부처는 세상을 고해라고 했다. 고통의 바다속에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왕위를 버리고 아파 울고 있는 존재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친히 높은 자리를 박차고 지상 최고의 낮은 자리로 내려왔다. 그리고 유일한 신이 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도 그랬다. 하늘 영광을 내려놓고, 묶이고, 병들고,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존재들을 구원하기 오셨다. 

 
그러나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는 이런 마음 자체를 거부한다. 아직도 이 땅에서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의 늪에서 허덕인다. 내 안의 신과 함께 걸어가는 것 같지만 정작 다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보다 확실한 거짓이 없으며, 이 보다 더한 사기가 없다. 아니면 양심이 화인을 맞아 소멸해 버렸거나!

나의 영원한 낮은 마음보다는 물질의 소욕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는 증거다. 왜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지 아는가? 하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모든 경전은 대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짓의 탈을 쓰고 얼마든지 겸손을 가장한 낮은 자리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긴박한 고통의 상황이 펼쳐진다면 그 거짓은 한 순간에 드러나고 만다. 스스로 견딜 수 없으며 자신의 위신에 금이 가는 것을 눈 똑바로 뜨고 볼 수 있는 낮은 마음이 장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높이 올라가라고 부추긴다. 내가 높이 올라가야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입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는 사실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것을 말이다. 바벨탑의 의미를 우리는 다시금 곱씹어야 한다. 그러나 낮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은 항상 감사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올바른 존재의 가치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살기 때문이다. 
 

신이 말씀하셨고, 우리는 지겹도록 듣고 알았다.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라고 하지 않았는가?
내가, 우리가, 이 나라가, 이 세상이 올바른 삶의 터전을 마련해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낮은 마음을 장착하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낮은 마음이 가장 큰 축복의 현장임을 기억하자!

 이런 존재의 극본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종교가 판을 쳐도 세상은 어둡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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