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들과 생활하는 공간에는 언제나 일촉 측 발의 위기가 발생합니다. 딸아이를 키우는 집은 조금 덜합니다. 아들을 키우는 집안, 그것도 세명의 아들을 키우는 집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전쟁터가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장난감의 널브러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어던지고, 뛰어다니고 바닥에 깔아 놓은 소음방지용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아들 셋을 양육하고 있는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거실에서 장난이 한창이던 사내아이로 인해 유리잔이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유리파편이 거실을 장악한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쨍그랑~!]하고 유리잔이 깨어지는 순간 정적과 동시에 모든 것이 일시 중단되고 아빠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집니다.
"야 너희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아빠는 정적이 흐르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깨어진 유리잔에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죠. 제자의 아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깨어 흩어진 유리잔의 흔적을 찾으며 제거하는 것에 초집중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장난 아닙니다. 간이 툭 떨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니깐요."
사내아이 셋을 키운다는 것은 회사를 운영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상의 긴장감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딸아이 한 명을 키웠던 나의 견해로서는 추측 불가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힘든 여정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내가 낳은 사랑의 열매가 자녀들입니다. 항상 감사의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 부모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힘든 삶만 전개되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집을 더욱 깨끗이 한다.”
우리들의 집 구석진 곳이 어떤 상태일 때 청소를 하게 되나요? 물건을 옮길 때나 새로운 가구를 교체할 때나 떨어진 동전이 굴러 소파밑에 들어갔을 때 소파밑의 실체를 보게 된 순간 걸레질을 하게 됩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할 때 전체를 돌아보는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제자는 아이들로 인한 사고로 평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거실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는 수고를 해야 했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을 통하여 집안이 더욱더 깨끗해지는 시간이 할애된 것이죠.
사내아이 세 명이 뛰어다니다 유리잔을 깨뜨렸기에 평소에 집안 구석을 채우고 있던 먼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더 깨끗한 거실에서의 생활이 전개됩니다. 사건과 사고는 언제나 깨어 있는 존재들에게는 감사의 제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존재가 성숙의 길을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병원을 잘 가지 않습니다. 귀찮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증세가 없을 때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에 건강이상 증세가 발생했을 때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삶이 제공하는 실패와 좌절, 심각한 고통 속에서 비로소 자신 앞에 진솔해지게 됩니다. 힘든 상황속에서 모순과 오류를 정립하게 되고 뒤틀린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길에서 돌아오기 위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우리에게 가시처럼 고통을 주는 문제와 사건은 부패하고 상한 우리들의 마음을 면밀히 살피게 합니다. 성숙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요소를 제거하는 유일한 도구는 나를 아프게 하는 가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크고 작은 고통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런 회복의 시간을 통하여 내가 원래 찬란한 존재로 회복되는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통스러운 가시! 하늘이 나의 손을 잡아당기는 절대적인 사랑의 표현입니다.
가시가 있어 우리는 올바른 존재가 되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가시가 있어 겸손한 존재로 정립될 수 있습니다.
가시는 신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신의 흔적입니다.
가시는 영원한 존재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축복임을 각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