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올라본 사람은 압니다. 처음에 산행을 할 때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러나 고통스러운 경로를 거치다 보면 어느새 가벼워진 발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처음으로 산을 오를 때는 익숙하지 않은 몸 때문에 고통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자주 등산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걷기까지는 언제나 무겁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거운 짐을 짊어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반드시 찾아오는 마음의 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갈등이라는 고개를 넘어가는 소리입니다. 한쪽에서는 "이 고비만 넘어가면 좋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과 한쪽에서는 "이제 그만 됐어 내려가자!"라는 생각이 교차합니다. 감사와 기대의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반면에 원망과 불평과 두려움의 마음이 함께 공유합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도 항상 가지는 기대가 있습니다. 정상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기대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하는 과정의 어떠함이 확연히 다른 결말에 도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마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신을 관찰하고 지키는 일에 충실한 존재의 정상과 그저 물질의 소욕을 쫓아 세상의 정상에 충실한 존재가 누리는 정상의 축복은 천지차이입니다.
존재의 가치를 내 팽개친 채, 그저 물질의 소욕을 쫓아 달려간 존재의 성공을 세상 사람들은 부러워합니다. 저들의 뒤를 따라 나도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어떤 수단과 방법, 비용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고 터득하려고 안간힘을 다 씁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마음은 그저 가시덤불에 둘러싸인 초가집신세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구요? 세상 성공의 기준이라는 돈을 좇아 정신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진짜 자신의 조정석인 마음을 소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대가는 엄청납니다. 유한한 물질이 무한한 마음을 결코 지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순간, 잘못된 곳에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 (내 뜻대로의 욕망의 끝)은 멸망이라는 말이 성경에 등장합니다.
우울증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물질로는 마음을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찾아오는 공허함의 현대병이 우울증입니다. 물질로는 채울 수 없는 빈 공간!!
그러나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삶을 우선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성공(그것이 세상이 보기에 미약한 것일지라도)은 더 높은 차원으로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어줍니다. 공허함이란 찾을 수 없고, 그저 내 존재 안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의 빛을 비출 곳만 찾아 나섭니다. 물질은 그저 내 마음이 지향하는 삶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여기시니요?
급한 것과 느린 것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크기로 판단해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급한 것이고, 우리가 크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우리가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엄청난 오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이성을 가진 존재의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결코 서두르지도 않으며,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신에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느냐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내려놓는 자의 삶과 내려놓지 못한 자의 삶의 마지막은 어둠과 빛의 세상에 도달하게 됩니다. 공든탑이 무너지는 아픔은 이제 그만! 결코 무너지지 않는 존재의 승리를 누리며 살아갑시다. 우리는 빛의 자녀들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