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하는 말에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고 세월이 흐르면 서로 닮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다 보니 닮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래를 하는 가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와 얼굴표정, 무대매너등을 연구하다 보면 어느새 원조가수의 향기가 묻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방이라는 것이 필수조건임을 문화 예술을 넘어 모든 분야에서 통용 시 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선진들의 발자취의 향기를 맡으며 자라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인간사는 모든 것이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과 오랫동안 사귀다 보면 어느새 그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유교인들은 노자, 공자, 맹자, 장자 등의 성인들을 오랜 세월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언행에서 성인들의 향기가 흘러 나오게 됩니다. 불교인들은 부처를 공부하다 보면 불성을 이루어 부처의 가르침인 자리이타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공부하다보면 내 안의 예수와 연합되어 십자가의 불변의 진리인 사랑을 실천하는 빛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실천적 삶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진정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들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빛이 빛을 찾아 빛이 되는 것이요, 생명이 생명을 본받아 생명을 전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아니 무엇을 사랑하며 살고 계십니까? 혹시, 교회를 다니면서 벗어버려야 하는 자아의 웅덩이에 탐욕의 불씨를 모으고 있지는 않나요? 교회를 다녀도 예수의 향기는 전혀 맡을 수 없는 그런 존재의 모습은 아닌가요? 혹시, 절에 다니면서도 부처가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고 있지는 않나요. 법당에 가서 절이나 하고 탑돌이나 하고 진정한 복의 가치를 모르면서 마음껏 소리 내어 구걸하다 오는 것은 아닌가요? 본질적 요소도 모르면서 돌아오지 않나요? 혹시, 일만악의 뿌리인 돈을 추앙하며 살다가 자신의 본성인 신의 성품을 잃어버린 채 허망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종교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을 옳고 그름의 차원과 맞고 안 맞고의 차원을 넘어 본을 보이며 고난의 행군을 하신 선진들의 마음을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언행 불일치의 삶을 사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죄는 내 뜻대로 자행자지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언행불일치의 삶을 사는 존재를 잘못된 존재로 판단하기보다는 아직 어린 차원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대답은 그럴듯하게 해도 행동으로 옳기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차원입니다. 그러나 사랑의 원천을 마음에 깊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존재들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듣고 배우고 깨달아, 그 깨달은 삶을 실천하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신의 롤모델의 찬란한 표현이 되기 위해 살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그분들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런 삶은 다른 어떤 삶도 아닙니다. 자유와 평안의 삶 속에서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세상 모두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 가치는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고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어떤 향기를 풍기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느껴지는 그 마음이 혹 우리의 본성은 아닐까요? 원래 우리는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온전한 존재였음을 각인할 때 우리가 살아가야 할 올바른 길이 눈앞에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