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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처리 받아야 비로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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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7. 2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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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말하지만 우리는 우리말만 하면서 산을 오릅니다. 

자연은 언제나 말을 건넵니다. 위대한 신의 대변자가 되어 때로는 아픔의 메시지를, 때로는 희망의 메시지를 아무런 대가 없이 무한대로 제공합니다. 그래서 자연이 바로 신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말을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들이 달려가는 길에 확실한 이정표가 되어 주고, 우리의 마음에 신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인도장을 찍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곤 합니다.

 

부산의 최고봉인 금정산 중턱에는 내가 즐겨 찾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내가 노래 한 곡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완성될 때까지 과연 이 노래가 신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곡인가를 시험해 보는 장소입니다. 외진 곳이라 등산객들의 왕래가 드문 장소입니다. 울창하게 우거진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청중이 되어 나의 노래를 들어주고, 불어오는 바람을 만난 잎사귀들이 박수를 쳐주는 세상 가장 아름답고 거대한 Concert Hall입니다.

 

이처럼 익숙한 마음으로 같은 장소를 왕래했지만, 오늘처럼 감동의 메아리가 나의 심령을 강타한 적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한 코스만을 선택해 다녔습니다. 몇 년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녔지만 오늘은 그 현장이 달라 보였습니다.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울창했던 숲은 걸치고 있던 옷을 완전히 벗어버렸습니다. 겨울이라 모든 낙엽이 다 떨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텅 빈 가지만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하얀 도화지에 메마른 나뭇가지를 꽂아 놓은 것처럼 텅 빈 여백의 아름다움으로 꽉 찬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이 주는 선물에 취한 채 산을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너의 자아가 다 떨어져 죽으면 이렇게 길이 훤히 다 보인단다”

기존의 나로서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생성될 수 없습니다. 

나의 자아로 꽉 차 있어 자행자지하면 살던 철없던 시절에는 나 자신조차도 감당하지 못하고 헤매다 지쳐 쓰러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습니다. 길을 찾고 찾아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더 캄캄한 흑암으로 도배되는 현실이었습니다.

열심히 달리고 달려간 길 끝에는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바윗돌이 길을 가로막아 섰으며, 감히 헤쳐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웅덩이가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나의 생각(자아로 가득 찬 마음의 움직임)은 결국 사망이라는 어둠의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삶이었습니다.

 

깊은 우울증, 두 번의 자살기도! 알 수 없는 어둠의 세력에 밀려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현장에서는 도무지 들을 수 없었던 자연의 속삭임은 나를 내려놓는 순간 들을 수 있었고, 그 속삭임이야말로 신의 음성임에 절대 감사를 배워 알게 되었던 대사건입니다. 

 

결국, 귀 있는 자는 겸손한 자이며, 겸손한 자는 내 뜻대로 살지 않는 자이며, 내 뜻대로 살지 않는 자는 만물과 소통하는 자쾌의 세계에서 자유로움을 누리게 됩니다. 진정 우리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리에 앉았다는 증거는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정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짓된 나인 자아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죠. 

 

돈을 벌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바칩니다. 그러나 내 영혼의 풍족함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현실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이유는 만물의 영장이 존재가 무너진 결과입니다. 최소한 우리가 그러지 말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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