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너 너무 설치지 마라! , 야 너는 가만있지를 못하네!. 너 너무 나대는 거 아니야!." 등등.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지적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도 내 생각이 발동함과 동시에 내 뜻대로 행함을 단행한 결과가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것은 태초의 인간에게서 발생된 문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악과 사건이며, 절대자의 뜻을 부인하고 자기의 뜻대로 행한 대가를 받게 된 것이 바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유다. 왕과 같은 신세가 쪽박을 차는 신세로 전락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깨어있는 존재들은 내 뜻대로의 삶을 추구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자아를 처리해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생겨난 도구들이 바로 명상이며, 묵언수행이며, 면벽수행을 하고, 기도며, 금식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더 온전한 존재로의 회복을 통한 복된 삶을 살기 위해 고행의 자처한다.
우리는 직업이라는 것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 업이라는 것은 자신이 이생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타고난 팔자라는 말도 이런 의미로 가볍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알면서도 욕망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해 망나니의 투구를 쓰게 되는 존재들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이런 케이스가 많다. 방송하고 행사만 해도 엄청난 부의 길을 갈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부의 유혹을 받아들여 망하게 된 사연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한방을 맞아도 장난이 아니다. 수억, 수십억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의 유명세가 사업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착각 속에 막무가내 저질러버린다.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와 사건들은 자신의 길을 벗어난 존재가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돌아오게 된다.
학생이 학교를 가지 않고, 노래방으로 출근을 한다? 그것도 지속적으로 한다? 그러면 결국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취득해야 하는 졸업장은 날아가고 만다. 모든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알지 못하고 망상에 사로잡혀 헛된 꿈에 젖어 산다면 지금 자신이 누리며 살아야 하는 모든 것은 한순간에 날아가고 만다.
그래서 소크라테스 형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너 자신을 알라!" 내가 누군지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내가 가야할 길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연속선상에서 비로소 존재의 빛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며, 불행이 아니라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항상 우리가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이 바로 중도의 마음이다. 내가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모두 보면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욕망의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냉철한 마음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묘책이 바로 중도의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다.
유혹이라는 것은 나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강력한 어둠의 세력이다. 그래서 내 뜻대로의 삶을 선택하게 만들고 결국, 추락이라는 고통의 현장에서 울게 만든다.
예수도 부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가만히 있는 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말은 "다 이루었다. 해탈"이라는 말이다. 인류의 문제를 풀었고, 나 자신의 문제를 풀었다는 말이다. 알고 보면 똑같은 말이다. 내 문제가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서 발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가만히 있는 것으로 해결책이 생겨난다. 문제와 자주 마주하게 되는가? 가만히 있는 훈련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아의 몸짓은 어둠의 늪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