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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종교에 의지하지 않으면 두려우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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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6. 17.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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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내 안에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부처다."라는 불교의 핵심진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거한다"라는 예수의 절대 불변의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이 귀한 말씀이 나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잠자는 나를 깨웠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 거하는데 우리는 어디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구별되지 못한 삶을 살았던 때가 있습니다. 원래 우리가 부처요, 원래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인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구했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는 무엇을 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함으로 하늘의 뜻을 다 이룰 수 있었고, 부처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남으로 인간 본래면목을 깨달아 알 수 있었습니다.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 뜻대로의 삶에서 돌이킬 줄 아는 내려놓음 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목사로써 교회를 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저를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친구야! 너는 왜 목사가 되어서 교회도 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니?" 평소에 주일성수를 열심히 지키는 자신의 입장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놀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야! 세상이 왜 이렇게 타락의 절정을 달리고 있는지 아냐? 그것은 예수중심이 아니라, 교회 중심이 되어서 그런거야? 세상의 빛은 예수지, 교회가 아니야." "그래도 교회는 나가야 되는 것 아니야?" "교회는 내가 진정한 교회가 되기 위해 다니는 공부방에 불과한거야! 내 안에 계신 예수를 만나기까지, 예수의 사랑을 통해 나의 못난 자아를 깨뜨리는 곳이 교회의 역할인 거야. 내 안의 예수를 만난 사람은 더 이상 종교행위를 하지 않고, 예수의 삶을 실천하며 살게 된단다. 어떤 것이 하늘이 기뻐할 만한 가치 있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게 의지하던 교회 건물이 없어진다면, 건물이라는 예배를 드릴 장소가 없어진 종교인들은 부도를 맞은 사장꼴이 되지 않겠니?" 

진리는 고요함과 고통속에 피어나는 꽃입니다.

수십 년을 교회 생활에 몸담은 친구가 이 말을 쉽게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중독은 판단의식을 가리는 완벽한 어둠의 술수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벗어나봐야 전체를 볼 수 있다." 마치 산속에서 나와봐야 산을 볼 수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 성숙된 존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마치 바닷가에 정박해 둔 배의 거룻줄을 풀지 않고 출발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종교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자는 것입니다. 아픈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지금까지 즐겁게 놀던 놀이터에 가지 못하는 아픔을 겪어야 비로소 더 큰 의식세계로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을 싫어합니다. 그저 편하게 안주하는 삶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존재의 성장보다는 그 자리의 높은 지위를 지향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어둠의 사슬에 걸린 완벽한 모습입니다. 겉으로 화려하기를 원하는 이런 곳에 무슨 거룩함이 있겠습니까? 귀 있는 자는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수는 어떤 시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셨는가?

 

예수가 등장한 시대로 가 볼까요? 어떤 부류가 진리의 말씀을 배척했는지 아십니까? 바리새인, 서기관, 제사장급의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내 것이 옳다는 올무에 걸려 있는 사람은 눈앞에 진실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절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꾸어 온 아름다운 정원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노리개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성장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교회 생활의 오랜 습성으로 종교행위에 대한 깊이를 알아가는 차원이 아니라, 신이 원하는 찬란한 삶을 살아내는 존재로의 회복이 진정한 생명입니다. 교회보다 크신 예수가 내 안에 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예수와의 연합은 교회보다 큰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인간은 세상보다 커서 정복하고 다스리고 땅에 충만한 찬란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으시고 '심히 아름답다'라는 감탄의 메시지를 던지신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종교행위를 한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이 지나도 진부한 모습으로 안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병폐입니다. 썩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적 존재라면 진리를 알고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하늘의 바람입니다. 세상을 보고 민망이 여길 수 있는 존재, 진정한 빛되신 예수 앞에 감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빛 된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존재가 하늘의 영광입니다. 아직도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두려우십니까? 그것은 아직도 내 안에 예수가 계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며,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교회에 나가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아가 소멸되어 내 안의 성전이 회복되면 저절로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원래 신의 성품대로 지음 바 된 존재인 것 만큼 절대 불변의 진리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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