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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을 통해 배우는 영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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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7. 3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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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위대한 전략의 승리를 만끽할 수 있는 ‘명량’이라는 영화를 수시로 봅니다. 명량대첩은 597916일 전남 울돌목에서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과 이순신 장군이 진두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12척의 배와의 전투가 펼쳐진 것을 일컫습니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싸움의 결과는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킨 조선의 압승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전투의 출정을 앞두고 이순신장군과 아들 이 회가 나누는 대화 장면은 영성의 핵심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순신은 결핵을 앓고 있었습니다. 귀향하여 몸을 돌보는 가운데 아들과 식사도중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아버지 이렇게 집에서 몸을 돌보는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의 헌신에도 아버지를 죄인으로 몰아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왕입니다.”

 

이순신의 대답은 영성을 아는 것을 넘어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아들 이회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없으면 나라가 없고 나라가 없으면 왕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백성은 제 살길만 챙기는데도 말입니까?”

“...... 밥이나 들자구나.”

 

여기서 이순신장군은 말을 이어가지 않고 식사하기를 권합니다. 여기까지가 아들이 소화할 수 있는 말의 수준임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장군의 이 말 한마디가 빛의 자녀들이 가슴 깊이 품고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말처럼 다가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말은 이렇게 해석이 되었습니다. 무릇 빛의 자녀 된 자의 의리는 충성을 다해야 하고, 충성된 마음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없으면 신의 나라가 필요 없고, 신의 나라가 없으면 예수도 필요 없기 때문이다.”

신을 높이면서 내가 낮으면 그게 뭡니까? 

우리가 오류에 빠져 모순된 삶을 살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죄인이요, 하찮은 존재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만을 높으신 분으로 모시고 사는 삶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살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은 높인다고 높아지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을 진정 높이는 것은 내가 빛의 자녀답게 성숙된 존재로 회복되어 찬란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분에 대한 기본적 도리에 불과합니다. 예배를 드리면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바뀌고 우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의식은 하찮은 존재의 구걸에 불과합니다. 진정으로 신을 높이고 영광이 되는 삶은 내 안에 신의 정원을 회복하고 신과 온전히 동행하는 삶을 살아내는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들의 자녀가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 말이나 잘 듣는 우물 안 개구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현명한 부모는 어떻게 대처할까요? 그 요구하는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존재의 길을 유도할 겁니다. 마치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산 것처럼 말입니다. 진정 신을 높이는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신의 마음에 흡족한 존재로 성장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흡족한 존재로 성장했다면 사랑하라는 유언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온전한 삶이 없다면 모든 것은 허상입니다. 

명량해전에는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아름다운 결말이 등장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배는 외군의 배들을 난파하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회오리물살에 휩쓸려 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 순간 구세주처럼 등장해 일촉 측 발의 위기에서 구원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은 기사회생할 수 있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충정은 더욱더 큰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부활로 인해 외군은 더욱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나라가 굳건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을 비롯하여 세상 만물을 통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원천적 존재로의 회복입니다. 이런 회복을 통하여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도 아들 이회가 더 큰 존재로서의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 우리들이 주인공으로 세워지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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