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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의 말이 존재의 가치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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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7. 2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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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근기(수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입이 보살이다."라는 말을 흔히 하곤 합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자녀들에게 "네 입이 보살이다."라며 꾸짖듯이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만사 모든 일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되는 법이니 말을 삼가여서 하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성경의 말씀이 있습니다. 알고 보면 존재의 정체성에 관해 이것보다 귀한 말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자리의 정도에 따라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표현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존재들은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 자신을 전혀 절제하지 못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깎이고 깎여 내면의 아름다운 향기를 흘려보내는 존재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 마음자리를 지키지 못한 존재와 신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마음의 성전에 불을 밝힌 존재와는 표현의 정도가 다를수 밖에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의 소유자들

그저 본능으로 자행자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은 어둠의 세력 아래 생명부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오며 생겨난 상처의 습성들이 난입해 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의 마음에는 의심이라는 단어가 주인이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할 수 있을까?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심의 마음으로 난도질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하는 존재들은 자신이 주인공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도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언제나 의심의 나락에서 헤매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둠의 세력에 짓눌려 주눅 들린 표현을 가감 없이 해댑니다. 겉은 멀쩡해도 실제적인 존재의 정체성은 완전히 파괴된 모습을 드러내지요. 불안 초조 원망 불평의 넋두리 세계입니다. 

긍정의 마음을 가진 소유자들

그리고 긍정의 마음을 가진 존재들이 있습니다. (고)조용기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많이 등장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의 향기를 덧입고 도전적인 메시지를 시사합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는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긍정의 표현입니다. 
 
영이 죽은 본능의 상태에서는 어둠이 전부입니다. 진실된 세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연지사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의 덩어리를 품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역인 빛 가운데 거한 존재들은 조금씩 어둠이 걷히고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할 수 있다. 해 보자라는 말을 과감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종교행위는 그 자체가 고귀하지만, 언제나 붙들어야 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지금 맛본 생명의 빛이 사라질까 두려워 어린아이 젖 찾듯이 두 팔 벌려 보채야 합니다. 종교행위의 고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죠!

절대긍정의 마음을 회복한 자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종교의 수준에서는 각자 신들의 그늘 아래서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도전적이며 의지적인 표현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성의 단계에 올라오면 의지적 차원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내면에 신과의 관계가 회복된 존재들의 입에서는 "될 수 밖에 없다."라는 절대 긍정의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신의 강력한 빛을 품고 있으니 안 되는 게 이상한 차원입니다.  
 

종교가 믿음을 말하는 것이라면 영성은 확실한 믿음... 확신을 말하는 차원입니다. 이것이 바로 긍정과 절대 긍정의 다른 차원입니다. 

 
이건 당연합니다. 신과 떨어져 있는 존재와 신 아래 거주하는 존재와 신과 연합된 존재의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일상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모르는 차원에서 아는 차원으로, 아는 차원에서 사는 차원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절망의 그물망을 펼치고 달려드는 험한 세상입니다. 이런 어둠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강력한 빛과의 동행입니다. 이 길은 내 자아가 처리받고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는 차원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 축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축복이 바로 절대긍정의 차원입니다. 

 
입이 보살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말의 위력에 까지 다다랐습니다. 우리가 진정 신의 사랑의 손길을 시작으로 관계가 회복된 존재라면 그 말의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다르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차원에서 지지고 볶고 있는 저 차원의 현장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했습니다. 그 말씀의 위력을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바 된 존재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말의 차원이 얼마나 고귀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곧 하나님의 표현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도, 유교도 이런 진리적 차원에서 생각하면 많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절대 긍정의 존재들이 살아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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