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간의 탄생은 축복의 대헌장아래 펼쳐졌습니다. 만물의 영장답게 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정복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재의 근원인 아담의 타락을 시작으로 축복의 샘에서 누릴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계속되어 온 것이 바로 모든 존재가 피해 갈 수 없는 고통의 굴레입니다. 이 고통을 해석하는 차원에 따라 모든 존재의 질은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몸에 질병이 침투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병원을 찾습니다. 그 근원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조치를 취하기 위해섭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병은 조직을 검사해서라도 그 원인을 찾아내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장비를 동원합니다. 의사들이 모든 수고와 노력의 집합체가 그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우리들에게 찾아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그 근원을 찾는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병이 찾아온 존재의 일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동분서주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존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아이러니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살면서 문제와 사건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한마디로 고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풀 수없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지켜보면 그 존재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요즘 세상에 판을 치는 것은 무속인들입니다. 유튜브나 방송매체에서 인기몰이를 하기 위해 많이들 애용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존재의 삶에는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현시대의 실체를 말하기 위해서는 비유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 주셔야 합니다.
무속인들은 산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듯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한 마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십시오. 그 당면한 문제를 푼다고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문제를 푸는 것에 중점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이 문제를 통해 내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 상태에서 어떻하면 올바른 존재로 회복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길에서 돌아설 수 있을까를 말하는 것입니다.
존재는 그렇게 남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약하기 때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존재라면 모든 문제와 사건을 나를 더욱더 올곧은 존재로 회복하기 위한디딤돌이요,채찍으로 삼습니다.
암이 걸렸는데, 빨간약이나 발라서는 안됩니다. 철저한 정밀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고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쏟아부어야 합니다. 우리 존재의 실상의 위대함을 아신다면 내 존재의 정체성회복을 위해 모든 것은 동원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정치인들의 어리석음이야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두 마음을 가진 존재들과는 사귀지도 말라고.... 한가지만 말씀드리자면, 세상의 어려움을 세상 속에서 찾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세상을 다스리는 존재의 타락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왜 인식하지 못하는지.... 아니 어리석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사항인가요?
빠른 것에 쾌감을 맛본 사람은 압니다. 더욱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래서 사고가 터지는 겁니다. 지속적인 악순환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조급한 존재의 탈을 벗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나의 문제를 돌아보고 철저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재 정립함으로 위대한 존재로의 회복을 꿈꾸며 살아야 합니다.
위대한 존재는 조급함을 벗삼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순응하며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알고 보면 가장 어려우면서도 쉬운 삶의 숙제입니다. 우리에게 고통이 찾아오면 나를 찾을 수 있는 하늘의 선한 손길임을 알아차리고 살아갑시다. 영원한 축복은 영원한 존재인 우리들의 회복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