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도하기를 좋아합니다. 영혼의 나약함을 스스로 드러나는 본능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기도라는 것은 자신에게 부디 친 한계라는 벽에 걸려 넘어가지 못할 때 넘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고 더욱더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하늘과의 교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기도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과정을 필수로 합니다. 그러나 실상을 그렇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인들은 하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저 현 위치에서 더 부요해지기만을 원하는 욕망의 도구로 사용하는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분명 성경에는 "아무것도 근심걱정하지 말라, 무엇을 마시고, 먹고,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질적 존재로 하늘을 향하지 않고, 본능적 존재로 다가갑니다. 출발점이 틀렸고, 목적지는 완전히 어긋나 있습니다. 시대가 아무리 자신의 성을 쌓기 위해 혈안이 되어가는 저급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도, 종교의 본질적 의미를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무엇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영원불변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현명한 어른이 준비도 되지 않는 존재들에게 달라고 한다고 다 주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그럴일을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조급함이 모든 것을 진행해 나가고 그 결과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마는 모래성이 되고 맙니다.
아침에 일어난 일입니다. 5살이 된 늦둥이 어린 딸이 어제 길을 걷다 길가에 진열해 놓은 자전거를 봤던 모양입니다. 아침에 눈을 떠자마자 지쳐 잠든 엄마를 보채기 시작합니다. 피곤에 절어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강력한 소원을 해결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댑니다. “엄마! 어제 본 자전거사러 가자. 나 그 자전거 꼭 사고 싶단 말이야!” 귀찮게 느껴질 정도로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말을 내 뱉습니다.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굳은 마음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이 우스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내 안에서 이런 생각이 문득 일어났습니다. “그래, 하나님도 달라하신다고 다해 주시겠나? 내가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가 되면 말하지 않아도 준비해 놓은 것을 알아서 주시지 않겠는가? 조른다고 주신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르기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딸아이가 원했던 자전거는 초등학생이나 되어야 탈 수 있는 사이즈입니다. 딸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자전거부터 배워 차츰 적응을 해 나가야 하는데 말입니다. 자기의 의식수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만 몰입합니다. 이런 수준의 존재라면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린 딸의 의식 수준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자기의 의식수준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욕망에만 몰입합니다. 지금의 종교인들의 행위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습니다. 더러운 그릇에 더 담기를 원하는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본향으로 향하는 존재의 모습이 아니라 머나먼 고향으로 가는 존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의 본래면목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면 도리어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심을 두게 됩니다. 진리는 나를 부인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즘같이 급한 세상에는 힘든 것을 외면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쉬운 일자리만 선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우여곡절을 잘 견디어 내야 진짜배기가 되듯,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조급함이 말세의 징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둠의 강력한 도구입니다. 신령한 존재를 생각 없이 살다가 무의미한 인생으로 마감하기를 원하는 어둠이 펼쳐놓은 괴략입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한 세상에 휘둘려 살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의 본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체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각인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우기 전에 채우는 것을 멈추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신과의 관계회복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내 안에 채우며 살았던 옛 구습의 찌끼들을 모조리 제거하는 비움의 법 안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된 선지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 비우는 혹독한 시련 없이 그저 복을 주장하며 받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가르침입니다. 지도자 자체가 조급함의 터널에서 나오지 못한 신세로 지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형국입니다. 집을 비우지 않고, 택배로 가득 채워진 집을 보신 적 있으시죠? 그런 우리의 모습을 하늘이 원하겠습니까? 내 안의 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요. "채워 달라고 구걸하는 낮은 차원의 존재가 아니라, 무엇이든지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존재가 되기 위해 구하라!" 왜 세상이 갈수록 어두워지는지 아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