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있다. 나의 존재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에 반하여 놀라운 사건이 펼쳐졌다. 한 초등학생이 자신의 의지를 꺾는다는 이유로 교감선생님의 뺨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어 버리는 기가 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학생의 부모는 담임선생님의 뺨을 때리는 치욕적인 장면이 연출되었다. 존재타락의 극치를 대변해 주는 현장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학생의 환경여건이 밝은 빛 아래서의 삶이 아니라, 어둠 그 자체로의 삶이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전적 요소를 넘어 가정환경이 모조리 붕괴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의 상실이다. 존재의 상실은 정체성의 상실이며, 정체성을 잃어버린 결과는 인연에 대한 본분을 망각해 버린채 경거망동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틀에 박혀 깨어져야 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인해 진정 소중한 것을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 부처가 말한 탐진치의 그물망에 걸려 있는 어리석은 존재의 모습이다. 순간적인 달콤한 향기에 젖어 영원한 존재의 가치를 소홀히 한 결과물이다.
"윗물이 맑어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말이 있다. 내 자신을 하늘에 비추어 본 아름다운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부모가 자녀들을 향한 무작정 기대감으로 가득 채워진 결과는 부패한 열매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런 절대 진리적인 요소를 배격한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부모자신을 먼저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겸손의 마음이 절대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자녀는 내가 낳았다고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나의 빛을 비추어 더욱더 찬란한 빛이 될 수 있도록 징검다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관계다. 해야 하는 존재라는 의식이 모든 부모들의 마음에 각인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빗나간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되돌릴 수 없다. 혹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는 듯하지만, 그 마지막은 도리어 더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자본주의 세상은 물질이 주인되어 자신을 주장하는 세상이다. 썩어질 물질의 앞잡이가 된다면 결국 진정한 자기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 증거는 돈이라는 것이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것에서 확증할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 돈에 의해 자신의 마음이 요동한다면 그 자체로 타락의 노선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존재들이 모인 공동체속에서 자라난 존재들을 그 누가 감당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부모와 같은 스승을 우습게 여겨 버리는 교권추락이라는 지상최대의 수치를 맞이해야 하는 세상 앞에 서게 된다. 존재가 없다면 모든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런데 존재회복에 대한 관심을 두기보다는 돈이라는 매개체를 내 주인으로 살고 살아간다. 더 나아가 그 일을 감당해야 하는 종교단체들까지 신과의 관계회복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권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지도자들이여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 세상에 무엇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지 집중해야 한다. 존재의 회복이야말로 모든 종교가 내세우는 지상최대의 과제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한다. 존재의 파괴는 가정의 파괴요, 가정의 파괴는 교권의 파괴요, 교권의 파괴는 세상의 타락과 직결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윗물이 맑아져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의 것으로 세상을 바르게 회복할 수는 없다. 만물의 영장인 존재의 회복만이 타락한 세상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 확신을 가질 때이다. 성경은 말한다. 예수는 내 안에 있으며 예수와의 관계회복이 가장 우선순위라고 말이다. 그리고 부처는 말한다. 내가 곧 부처라고! 노자는 말한다. 네 안에 오염덩어리를 덜어내라고! "타인의 눈에 티끌을 보지 말고 네 눈의 들보를 보라."라는 말을 다시금 새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자! 알고보면 내가 하늘의 뜻대로 서는 것보다 귀한 것은 없으며, 이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증거는 없다. 만물의 영장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