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역사는 말로나 글로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합니다. 그만큼 화려한 변천사를 그려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성씨가 다양한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너무나도 다양한 종파가 자신들이 교리를 내세워 확장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어느 교의 비리를 목격한다든지,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든지, 자신이 보기에는 잘못된 것 같다면 마치 멋지게 회향하는 개선장군처럼 새로운 도전의 역사를 과감히 써 내려갑니다. 개신교(기독교)도 가톨릭이라는 원뿌리에서 중세시대의 교권확대를 위한 면죄부 비리를 비롯하여 95개의 항목이 잘못되었음을 선포한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이라는 미명아래 시작된 것입니다.
불교와 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청난 종파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놓으라 하는 실력자들의 등장입니다. 다양성! 인정되어야 하는 부분이며, 각 분야별 전문가의 출현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뿌리에서 나온 각자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요리 연구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 분야별 최고의 대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판매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요리 연구가들은 각 분야의 요리에 대한 최고의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찬가지로 각 분야 종교의 대가들도 최고의 사람을 만드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는 종교의 본질에 들어서지 못하고 종교의 형식에 갇혀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의 출현을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교회, 온전한 성경, 온전한 종교행위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은 이런 가변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가변적인 것을 통하여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예수가 말한 것은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이요, 부처가 말한 것은 네가 곧 부처라는 겁니다. 이것은 결국, 온전한 존재의 표본 되신 분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온전한 존재,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고 확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까? 종교를 통한 세상의 축복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유행하는 '평행선'이라는 노래가 잘못된 종교의 길을 가는 우리들을 대변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종교의 본질은 내 안에 계신 분들을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고, 나의 모순과 오류를 발견하고 처리받아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종교의 길은 세상에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내가 아니라, 진정한 나의 본래면목을 만나는 여정입니다. 회개, 회심이라는 것은 전환점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걸어온 잘못된 길에서 되돌아가는 이정표가 자신이 의지하고 걸어가는 종교입니다.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종교는 세상의 복을 주는 곳도 아니고, 그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곳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짊어지고 있는 문제와 사건의 출처를 바르게 깨달아 다시는 그 문제와 사건을 대면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 모든 것을 올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관찰할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밝은 존재가 되었다면 더 이상 종교는 필요치 않습니다. 어떠한 종교형식도 필요치 않습니다. 그저 올곧게 서 있는 나 자신을 지키는 것에 최고의 관심을 기울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일이며 위대한 일입니다.
이런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라는 놀라운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이 종교의 위력이며, 지상 최고의 축복의 메시지입니다.
물고기는 자연산과 양식으로 나눕니다. 자연산은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물고기며, 양식은 정해진 틀 안에서 철저한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 물고기입니다. 그 생김새는 비슷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맛은 천지차이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게 보여도 틀 안에서 자란 사람은 존재의 미묘한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친 들판에서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며 만들어진 사람은 뿜어내는 향기자체가 다릅니다. 인생 여정길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모진 아픔 뒤에 벗겨진 진정한 나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이 진리를 가르치고 탄생시키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본질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