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적인 존재의 특징 중의 하나는 원망 불평의 터널을 신나게 드나든다는 것입니다. 원망 불평의 늪에서 놀고 있는 자기 자신이 어떤 형태로 변질되어 가는지도 모른 채 마음 편히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과연 자신의 정체성은 어디에 두고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찾아듭니다. 더 나아가 진정 마음을 돌이켜 거듭 태어났다고 하는 존재들의 입에서도 시커면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저미어옵니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고 사는 것 초차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거듭 태어났다면 최소한 감사는 아니더라도 원망 불평의 터널에서 놀아서는 안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수틀리면 그 속에 있는 어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존재와 몸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람은 힘이 듭니다. 매사에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남을 비방하기 시작합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남의 탓으로 끝을 맺습니다. 자신을 철저하게 방어하는 습성 때문에 타인의 아픔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존재는 자신만 천국이면 모든 사람이 지옥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는 의식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습니다. 모든 성경속 위대한 인물들이 수많은 시간을 이런 내 중심적인 삶을 사는 육적인 존재들과의 한판 승부를 벌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나 자신은 어떤 부류의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선봉장이 된 야곱은 수많은 세월을 외삼촌 라반과 한판 승부를 벌였습니다. 각자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속이는 행위를 합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왕과 싸웠습니다. 다윗은 사울왕과의 싸움을 십 년 동안 벌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한 군사들과 수십 년을 사투를 벌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들의 푯대 되시는 예수는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과 같은 기득권세력의 모함과 싸워야 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을 향한 하늘의 뜻은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오래전부터 품고 살았던 육적 찌꺼기를 제거하고 영적 존재로의 성장을 도모하신 것입니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혹독한 시련을 순종으로 견디어 내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영광의 자리에 이름을 올릴 수 없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고,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하늘의 뜻을 분별하며 견디어 낸 대가 입니다. 인연에는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이 다하면 헤어짐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인간은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먼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욕망으로 충만한 라반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환경속에서 견디며 살 수밖에 없는 야곱과 같은 존재입니다. 좋아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고 오갈 때가 없어 어쩔 수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합니다. 갖은 수모와 수치를 당합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환경설정을 인간 스스로가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늘만이 모든 것을 주관하기 때문에 옴짝달삭하지 못합니다. 그저 순종이 가장 아름다운 대처 방안이 될 뿐입니다.
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위안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옥을 품으로 천국이 된다고 말입니다. 절대적으로 마음이 맞지 않는 존재와의 인연이 있기에 내가 더 아름다운 존재로 더 찬란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든 인연을 통해 나의 모난 부분을 깎아갑니다. 그러나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존재는 나에게는 더 깊은 칼날이 되어 나의 잘못된 모순을 도려냅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로 이런 의미입니다. 절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아이와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을 감행해도 쉽사리 맞추어지지 않습니다. 생각의 관점과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로 인해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나의 영적스승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과정을 잘 거쳐야 나를 낳아 준 부모의 마음도 알게 되는 겁니다. 요즘 인생들을 보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보입니다. 조금만 자신과 맞지 않으면 내팽개처버리기 일쑤입니다. 조금만 힘이 들면 그만 두기를 반복합니다. 인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모르고 그저 편한 것만을 찾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급급합니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달고 맛있는 열매를 먹고는 싶지만, 힘들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의지입니다. 마마보이를 자축하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존재의 수치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지옥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는 모든 인생들의 마지막 종착역인 지옥을 품었기 때문에 천국의 왕으로 계십니다. 내가 지옥 같은 삶을 품으면 천국이 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인들은 남기고 갔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