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살아가면서 절대 필요요소는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이죠.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이것을 위해 살아간다고 말을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지 모릅니다. 이런 삶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해 직장을 구하는데 젊은 시절을 올인합니다. 조금 더 편하고, 조금 더 보수를 많이 받고, 조금 더 나은 복지를 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내 존재와는 관계없는 삶의 필요충분조건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며 다니는 것이 직장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과의 만남 가운데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실례지만 무슨 직업을 가지고 계십니까?"라는 말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느냐는 것이죠. 그리고 얼마큼 가방끈이 긴가를 책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장과 직업의 개념은 엄연히 다릅니다. 직장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장소의 개념이며, 직업은 나의 업을 닦는 개념입니다. 이 두 개념이 하나 되어 나의 업을 닦기 위해 일을 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따지고 보면 직장과 직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한마당의 개념이 됩니다.
직장에서 나의 업을 닦는다? 일반인들은 이런 개념에 무관심입니다. 돈을 벌어 가족을 돌보고, 나의 미래를 축척하고,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직장을 다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더 온전한 존재가 되기 위해 방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 속에서 나의 업! 내 안에 잠재해 나를 조정하는 자아를 처리받는 현장이 직장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마음이 제대로 정립이 되어 겸손한 삶을 꾸려 나간다면 자신이 상상하지 못한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축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한 명은 만나게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그 사람이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고, 부하가 될 수도 있고,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도 있고, 참여하고 있는 사회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치명적인 상황에서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미친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만 생각하면 내 속은 뒤집어지는데 사랑할 수가 있나? 충청도 말로 환장할 노릇입니다. 그러나 인연의 법칙을 이해하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정리가 되면서 해결됩니다.
직장에서 업을 닦는다? 직장에서 내가 더 온전한 존재가 되어간다? 세상에는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직장이라는 곳에도 질서가 있습니다. 그 질서는 함부로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엄격한 룰이 존재하는 곳에 '말단'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출근을 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과 인격이 한순간에 물안개의 늪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견디며 이겨내야 합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 강한 철을 만났을 때 기존의 칼이 더 날카로워진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마음과 결코 맞지 않는 직장 상사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더욱더 쓸모 있는 성숙한 존재로 변모해 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아부라는 개념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타인에게 초점이 맞춰진 삶이 아니라, 실제적인 내 존재의 성숙에 초점이 맞추어진 삶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직장에서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비법입니다.
우리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업의 숭고함을 받아들여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의 성장할 수 있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소속된 공동체도 바르게 세워지고, 나도 바르게 세워진다면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거대한 존재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겠죠? 직장과 직업은 먹고사는 것을 넘어 나를 나되게 하는 사랑의 지팡이입니다. 그 인연의 주관자가 바로 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