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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나는 처절한 고통 속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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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적온유함 2024. 6. 1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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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와 영성

 

오늘은 얼마 전에 절친의 소개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던 사경명인의 공방을 찾았다. 형 내외와 나는 명인이 베풀어주신 차의 깊은 맛에 흠뻑 취해 즐거운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잘 알지 못하는 차의 세계를 만끽하고 있었지만, 우리들 속에서 오가는 대화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자리에서 노닐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삶의 진미 같은 것이었다. 형님이 차를 한 잎 가득 물고서 이렇게 내 뱉었다.

 

"야~~ 쓰다"

 

이 말을 듣던 명인이 한마디를 거든다.

"쓴 맛 속에 단맛을 볼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순간 나의 마음속에서 샘솟듯 솟아나는 한마디가 있었다.

"그렇지~ 고통 속에 기쁨을 맛볼 줄 아는 것이 성숙한 존재지."

'다도의 세계에도 이렇게 오묘한 느낌의 세상이 있구나'라는 생각은 영성의 세계와 접점이 되어 갔다. 

진정한 나는 고통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심리학 박사 빅터플랭클 (Vic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박사가 직접 경험한 것을 영성학적차원에서 보고한 내용의 글이다. 박사가 시체들이 난무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의 끝자락에서 한탄의 목소리를 쏘아 올린다. 그때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곳에 내가 있다." 이런 극단적인 고통의 현장 속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늘의 소리다. 왜냐하면 죽음과 같은 고통의 골짜기에 다다라야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하늘의 마음과 일치하는 접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도의 세계도 그렇고, 영성의 세계도 그렇다. 하늘이 제공하는 고통이라는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결코 나를 돌아보고 내려놓고 새로워지는 것을 지향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을 때는 더 좋은 것만 생각하지 나를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만한 존재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자연인이라는 방송만 보더라도 고통이 얼마나 축복의 계단인가를 느낄 수 있다. 어느 멀쩡한 존재가 스스로 칠흑 같은 어둠만이 활보하는 산속을 찾아 들어가겠는가? 삶의 고통이라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을 맞이했을 때 비로소 발길을 돌려놓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 그 비참한 신세에 얼마나 울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겠는가? 그러나 자연인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마음으로 되돌아온 듯한 순수함이 장착되었다는 것이며,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말들을 한다. "여기가 천국입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온 산에서 만사형통의 길을 찾았다는 고백이다. 

고통의 가치를 아는 만큼 나의 가치는 상승한다.  

쓴 맛 속에 단맛을 본다는 것은 진정으로 역세계의 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깊은 고통의 세계는 가장 큰 감사와 기쁨의 세계로 길을 인도한다는 내용과 일치되어 갔다. 고통의 정도만큼 내 안이 밝아질 것이며, 내 안이 밝으면 세상이 밝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통을 가치로 여긴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적 존재임을 깨닫고 하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추구하는 자들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영원하지도 않은 생명을 고통의 늪에 가둔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위는 없다. 육신의 존재들은 그저 쾌락으로부터 제공되는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기에 고통의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말을 공유하고 싶다. "지옥을 품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왜냐고요? 고통으로 말미암아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정결한 마음만큼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싯달타는 모든 왕권과 처자식을 버리는 고통을 감내함으로 부처의 길을 완성할 수 있었고, 예수는 십자가의 고통을 감당함으로 부활의 첫 문을 열 수 있었다.  이것이 놀라운 역세계의 비밀이다.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 누구도 고통의 터널에서 스스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세상은 문제와 사건이 난무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이 내게 주는 유익을 믿음으로 감당한다면 나의 존재가치는 상승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모든 삶의 여정은 존재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하늘의 영광은 물질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치에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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