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靈性, spirituality)은 인간의 내면적 경험과 삶의 의미, 목적, 연결을 탐구하는 개념입니다. 영성은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지만, 반드시 종교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성은 개인의 믿음, 가치, 태도, 행동을 통해 나타나며, 이는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내면의 탐구를 통하여 자아성찰을 돕습니다.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아 풍성한 삶을 살게 도와줍니다. 그리고 영성은 더 큰 존재와의 연결을 경험하게 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지향하게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온전한 존재로의 회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신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영성이라 말하고, 불교는 원래 부처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초점은 원래 존재의 회복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무지한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어 종교가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적 요소에 집중하지 못하고, 외형적인 문제와 사건의 해결 방안으로 종교를 둔갑시키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나를 향한 사랑의 손길이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문제와 사건입니다. 잉? 문제와 사건이 사랑의 손길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문제와 사건이 없다면 인간은 교만의 늪에서 허덕이다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항상 자신을 살피고, 겸손의 옷을 잘 챙겨 입으라는 의미로 문제와 사건(사업실패, 자녀문제, 부부문제, 건강문제등)이 주어집니다. 타락해 가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싸인임을 알지 못하고, 그저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어린아이가 따로 없습니다.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임을 각인한다면 이런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면 잘 될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부여합니다. 그저 출석교인 부풀리기에 모든 것을 동원합니다.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교인들의 주머니를 노립니다. 강압적인 헌금강요를 통하여 숨통을 조여갑니다. 이런 것들이 하늘에 복을 쌓는 길이라는 족쇄를 채워 종교에 헌신하게 합니다. 이런 집단은 그저 회복되지 못한 지도자 한 사람의 명예만을 높이고, 건물을 확장하는 역할을 감당할 뿐입니다.
절에 가서 절을 합니다. 탑돌이를 합니다. 죽은 부처의 축복을 기대합니다. 이런 행위는 부처의 출현과는 전혀 상관없는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부처가 강조하는 것은 첫 설법인 고집멸도 사성제를 시작으로 존재의 본래형상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존재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잠시 잠깐 살다가는 찰나의 시간에 필요한 축복만을 간구합니다. 절만 커지고, 스님들만 부요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가 타락의 길을 갈구하는 모습만 보일뿐입니다.
종교는 신만 높이는 오류를 범합니다. 신의 출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의 회복인데, 신만 높이고 있다는 것은 신을 두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하늘의 소원은 존재의 회복입니다.
진정한 영성은 말 그대로 창조주와의 관계회복입니다. 창조주와의 관계회복은 곧 존재의 회복을 의미하며, 존재의 회복이란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원래 인간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신의 성전임을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내 마음이 무엇에 지배를 받고 있는지,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지, 어떤 삶을 지향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라는 의미입니다. 왜 등대가 있고, 이정표가 있으며, 지도가 있습니까? 길을 잃지 말라는 것이죠! 우리를 향한 신의 역할도 존재의 길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주문입니다. 성경이 그렇고, 경전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 얼굴에 잡티가 묻었나를 살피기 위함이며, 더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모든 성경과 경전은 이런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만든 자아의 성이 설쳐대지 못하도록, 더 나아가 그 자아를 처리하는 방편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이런 내 안의 문제점들을 처리하기 위해 고난의 아픔이 제공된다는 사실입니다. 존재회복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의 회복이 시급한 세상입니다.
진정한 영성이란 존재의 회복을 통한 세상의 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은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