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속 시원함을 느끼면서 보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tvN드라마 '플레이어 2 -꾼들의 전쟁'입니다. 세상에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다양한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숮검댕이 눈썹의 원조인 송승헌을 비롯하여, 요염하면서도 예쁜 오연서, 색다른 연기의 달인 이시언, 무게감 넘치면서도 코믹을 이끌어가는 태원석, 귀여운 카리스마가 독보적인 장규리가 풀어나가는 팀플레이 액션 드라마입니다.
5회 방송분에 주인공 강하리(송승헌분)과 강하리를 못마땅하면서도 범인 검거에 일등공신인 강하리 팀과 하나가 되어가는 검사가 나누는 대화가 있습니다. "틀을 깨야 더 큰 것을 볼 수 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 대사는 정말 가치 있는 한마디가 되어 다가왔습니다. 틀이라고 하는 말과 중독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틀이라고 하는 것은 나만의 영역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가진 것과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는 형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는 자아의 성이라고 하며, 아집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을 벗어나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중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독은 나약한 존재를 대변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나의 세계가 모든 세계의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가게 합니다.
틀을 깨지 못한 자체가 중독 증세를 앓고 있는 현상입니다.
중독은 망상이라는 그물망에 씌어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양면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산 속에 있으면 산속의 오묘함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산의 웅장함과 위대함이 주는 메시지는 들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산에 대한 올바른 견해와 식견을 겸비하게 됩니다. 벗어남의 능력을 통하여 두 가지에 모두 공감할 때 진정한 평안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인도의 철학자요 영적거장인 크리슈나무르티의 저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아는 것으로 인해 제한된 존재로 살 수밖에 없으며, 내가 아는 것으로 나 스스로 올무를 채우고 살아간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고 싶으면 자신을 감싸고 있고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기존의 틀을 깨지 않고서는 존재회복의 위대한 여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대언해 줍니다.
우리들의 삶은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알에서 병아리가 깨어 나오고, 거북이가 알에서 깨어나오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깨어남에 필요한 것은 헌신과 고통이라는 두 단어입니다. 이것은 탄생에 대한 깨어남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삶 속에서 틀을 깬다는 것은 자신이 고수해 온 고귀한 가치를 벗어던지는 것이며, 낯설고 생소한 길을 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길을 스스로 선택해 가고자 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독한 아픔이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백화점 진열대에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다이아몬드가 있습니다. 스스로 다듬어진 것이 아닙니다. 혹독한 깎임과 갈림의 과정을 거쳐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기존의 가치를 깨고 나오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혹독한 시련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습니다.
기존의 틀을 깬다는 것은 아픔이지만, 그 결과는 성숙입니다.